슬리퍼 신고 활보…공시생, 청사 내 편하게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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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 줄을 서 있는 분들이 공무원입니다만. 불경기, 청년실업, 지방대 출신의 어려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집합돼 있는 것이 이번 공시생의 정부청사 침입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다음 날 바로 이런 풍경으로 이어진 것이죠. 오늘(7일) 아침 정부종합청사 앞의 풍경입니다. 길게 늘어선 줄의 길이는 100m가 넘었다고 합니다. 원칙대로, 신분을 확인하고 소지품을 검사하다 보니 이렇게 지체된 겁니다. 이런 생경한 모습을 만들어 낸 건 26살 공무원시험 준비생이었습니다. 그는 2월 28일을 시작으로 한 달 넘게 청사 사무실을 자기 안방 드나들 듯 했습니다.
[송모 씨 : 죄송합니다.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공무원이 대체 뭐기에 이런 범죄까지 저질렀을까. 물론 절실하다는 것이 범죄의 이유가 될 순 없을테지요. 어쨌거나 경찰은 송 씨의 단독범행으로 잠정 결론내렸습니다.
조력자 없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강신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경찰 조사에 따르면 송 씨는 지난 2월 28일, 주말 휴가에서 복귀하는 의경들 틈에 끼어 청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곤 보안카드가 필요없는 체력단련실로 들어가 신분증을 훔칩니다.
송 씨는 이날 시험 문제지를 훔치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필기시험일은 3월 5일이었습니다.
필기시험 다음 날 다시 청사에 나타난 송 씨.
이번엔 자신이 치른 시험 답안지를 조작하려고 했지만 사무실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지난달 24일에는 필기 합격자 명단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 사무실이 있는 16층으로 올라갑니다.
도어록 옆에 적혀있던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내부진입에 성공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를 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틀 뒤 다시 청사 CCTV에 포착된 송 씨는 9시간이나 사무실에 머물며 담당자 2명의 컴퓨터 보안을 뚫고 서류를 조작합니다.
당시 그는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슬리퍼를 신고, 카디건 등 편안한 복장으로 오래된 직원처럼 태연하게 청사를 활보했습니다.
심지어 인사혁신처가 합격자 명단이 조작된 것을 알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난 1일에도 5시간 동안 청사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밝힌 것처럼 송 씨가 다섯 번만 청사를 출입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습니다.
정부청사 CCTV 녹화 영상은 한 달만 보관하기 때문에 3월 이전 송 씨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한 대학 졸업반인 송 씨는 2~3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대학 추천을 받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