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선업계 구조조정 본격화…하청·비정규직 '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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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8일) 현대중공업은 조선 관련 계열사 임원의 25%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반 직원들도 올해 중 3000명가량을 내보낼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도 곧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조정이 정말 본격화하는 분위기죠. 그런데 실상 울산과 거제, 통영 등 동남권 조선업 벨트에선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이 아니라 이미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청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지역경제는 불황을 넘어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심각한 현장을 취재기자들이 다녀왔습니다.
먼저 배승주 기자입니다.
[기자]
60대 가장인 김모 씨가 대리운전 기사로 나선 건 6개월 전부터입니다.
대형 조선소 하청업체 용접공이었던 김 씨는 일감이 끊긴 뒤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은 겁니다.
[김모 씨/대리운전 기사 : 갖은 욕을 다하는 고객을 만날 때 회의가 많이 들지만 독하게 마음먹고 해야죠.]
경남 거제의 번화가입니다.
지금 시간이 저녁 7시로 퇴근시간대인데 보시는 것처럼 거리가 비교적 한산한데요.
조선소 작업복 차림의 무리들로 북적대던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술집 주인 : 예전에 퇴근 시간만 되면 길거리에 사람이 많았는데요. 지금은 문 열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감을 해야 하죠.]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도 중·소 조선소가 밀집한 통영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조선소 인근 지역에선 어김없이 빈방이 넘쳐납니다.
[원룸 주인 : 업체에서 방 9개를 썼는데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망갔거든요.]
이 와중에 인력사무소는 슬픈 호황입니다. 실직한 조선소 직원들이 대거 몰리기 때문입니다.
[조문종 대표/OO 인력 : 비 오는 날은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20~30명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해양 플랜트 수주잔량이 소진되는 6월부터가 진짜 위기라는 말에 동남권 조선업 벨트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앵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각 지자체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어서 구석찬 기자입니다.
[기자]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뽑습니다.
카드는 이웃집 여대생을 감금하고 빼앗은 겁니다.
승용차가 불에 탔습니다.
차 안에 착화탄을 피우고 자살을 기도한 겁니다.
모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조선소 실직자들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울산과 경남 거제 통영 등 동남권 조선벨트 체불임금은 571억 원으로 전년 대비 40%가량 늘었습니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근로자는 1만 3000명이 넘습니다.
올해도 최소 2만 명 이상의 실직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직원 :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불안합니다.]
지자체들은 비상대책반을 꾸리고 중소업체에 경영자금 지원이나 재정 조기 집행에 나섰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동남권 조선업 벨트 지자체에선 긴급구제자금 지원과 세제지원이 가능한 특별고용지원지역 지정을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정부는 노사 간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정 협의와 사전 재취업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